2015년 4월 13일 월요일

김은국 <순교자>에 나타난 흥미로운 대목들

우리나라는 개화기를 지나 본격적인 기독교의 전래 이후부터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하게 기독교에 영향을 받았다. 기독교와 정치권력간의 관계는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다. 통치권력과 기독교계가 어떻게 융합했고 또 대립했는지 그 흐름을 분석한 연구들이나 책들을 보면 흥미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속물적인 인간성을 그대로 본는것 같아 마음에 거리낌이 있다. 

오늘은 소설에 나타난 내용을 통해서 불편한 마음을 다시한번 돌아보기로 한다. 김은국의 <순교자>는 한국계 최초로 노벨 문학생 후보에 오른 재미작가 김은국의 대표작으로 참혹한 전쟁이 빚어낸 신앙과 양심의 갈들을 적절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오늘 읽은 한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체 등장인물과 갈등관계를 살펴보는것도 좋겠지만 여기에서는 인물들의 대화에 집중하기로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이 대단해."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 멈추었다가 망설일 것 없다는 투로 말을 계속 했다. "요샌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없는 것 같아. 기독교도인 체하는 게 대 유행이야. 대통령에서부터 장관, 장성, 영관급 장교들, 말단 사병에 이르기까지 말일세. 군대에 기독교 군목이라는 것까지 있잖아? 미군 고문관들을 즐겁게 해주느라고 말야. 자넨 내 어려운 입장을 알겠지?" p19

"자, 여러분, 당신들의 위대한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었나 알고 싶다고 했지 당신네의 그 위대한 영웅들, 위대한 순교자들이 꼭 개새끼들처럼 죽어갔단는 말을 들려줄 수 있게 되어 기쁘구먼. 꼭 개새끼들같이 훌쩍거리고, 낑낑거리고, 엉엉 울면서 죽어갔어! 살려달라 아웅성치고, 자기네 신을 부정하고 동료들을 헐뜯는 꼬락서니라니 과연 한번 보기 좋았지. 그자들은 개처럼 죽은거야! 개처럼. 알겠어? 모두 죽여버렸어야 하는 건데!" p140

본격적인 서평은 다음에-

2014년 9월 16일 화요일

팀켈러의 일과 영성 중에서 노동은 일 자체에 기여해야 한다는 도로시 세이어즈의 글

오늘날, 누구나 공동체에 봉사할 의무가 있다는 선전 구호를 흔히 보지만 사실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일한다는 개념에는 역설이 내포되어 있다. 사회를 섬기는 걸 일차적인 목표로 삼는 건 일을 조작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섬긴다고 생각만 해도 바로 그 순간부터 다른 이들이 이편이 수고에 얼마간이라도 책임이 있다는 의식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공동체에 요구할 몫이 있다는 관념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보상을 흥정하고, 갈채에 눈길을 주며, 감사를 받지 못하면 불만이 싹튼다. 그러나 일 자체에 이바지한다는 의식을 가지면 다른 무언가를 구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일이 줄 수 있는 대가는 완벽하게 정리된 모습을 볼 때 얻는 만족감 뿐이다. 노동은 모든 걸 다 가져가고 아무것도 베풀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일 자체를 위해 일하는 것이야 말로 순전한 사랑에서 비롯된 노동이다. 

공동체를 섬기는 참 길은 하나 뿐이다. 진심으로 공동체에 공감하며 그 일부가 되어 일 그자체에 기여해야 한다. 그게 공동체를 섬기는 일이며 노동자의 비지니스는 그 작업을 해내는 것이다. 

팀켈러의 일과 영성 중에서 복음은 일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다와 관련하여

순전히 은혜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이신칭의의 복음은 일에 관해 또 다른 통찰을 준다. 옛 수도사들은 종교적인 행위로 구속을 받으려 애썼던 반면, 대다수 현대인들은 직업적인 성공에서 구원을(자존감과 자부심) 찾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높은 보수와 지위를 보장하는 자리에 연연하며 비뚤어진 방식으로 그런 일들을 ‘섬기게’되었다. 그러나 복음은 일에 기대어 자신을 입증하고 정체성을 지키라는 압력에서 해방시켜준다. 이미 인정받고 안전해졌으므로 달리 애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단순 노동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와 고상해보이는 일거리를 부러워하는 마음가짐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제 일은 종류와 상관없이 인류를 값없이 구원하신 하나님과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수단이 된 까닭이다.

팀켈러의 일과 영성 중에서 일의 능숙함과 관련하여

도로시 세이어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가 총명한 목수를 대하는 걸 보면, 보통은 취하도록 술을 들이키지 말고, 여유 시간에 망나니 짓을 하지 않으며, 주일마다 꼬박꼬박 예배에 출석하라고 타이르는게 고작이다. 하지만 교회가 해 주어야 할 얘기는 따로 있다. 신앙을 좇아 살려면 무엇보다 훌륭한 테이블을 만드는게 우선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일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주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능숙한 사역이다. 하나님이 일을 주신 목적이 인간 공동체를 섬기게 하는 데 있다면, 그 뜻을 받드는 으뜸가는 길은 주어진 과업을 끝낼 뿐만 아니라 제대로 해 내는 것이다. 

팀켈러의 일과 영성 중에서 죄를 다루는 부분

철학자 알 월터스의 정리

아담과 하와가 죄에 빠닌 건 개인적인 불순종 행위 수준에 그치지 않으며 피조 세계 전반에 재앙이나 다름없는 사건이라는 게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다. 죄의 파장은 피조물 전체에 두루 미친다. 원론적으로 그 무엇도 타락의 영향에 잠식되는 걸 피할 수 없다. 국가나 가족 같은 사회구조는 물론이고 예술이나 기술 같은 문화적 추구, 성과 식생활 같은 신체적인 기능을 비롯해 세상에 속한 그 무엇을 살펴봐도, 창조주께서 친히 지으신 멋진 작품들이 이제는 주님을 거역하는 터전으로 전락하고 말았음을 볼 수 있다. 그런 뜻에서 바울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팀켈러의 일과 영성 중에서 진로와 비전의 선택과 관련하여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을 하자마자 흔히 돈이 되는 직업으로 몰려드는 현상을 보게 된다. 목회자, 학자, 낮은 임금을 받는 평범한 직장을 비롯한 무수한 분야들에는 흥미가 없었다. 직접 물건을 생산하는 노동자에게는 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공동체를 섬기는 데 인생을 바칠 수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멍청하게 살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에 인생을 쏟아부울 수도 있고 영웅이 도리 수도 있다. 양쪽의 차이를 파악하는 데는 엑셀 데이터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과 직업관을 가르치는 서적들이 더 긴요하다.

저마다 능력이나 달란트, 수용력에 어울리느냐와 상관없이 빈약한 상상력으로 일자리를 선택한다는것이 문제다. 벌이가 좋다거나 사회적인 필요가 있다거나 근사하고 신나는 직업들에 몰리게 된다. 

이전 세대들은 누구의 아들이라든지, 시내의 이런 동네에 산다든지, 어느 교회나 클럽의 맴버라든지 하는 걸로 자신을 규정해왔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직업이나 직장의 위상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해결책은 꿈이 아니라 현실속에 있다고 깨달은 사람

해결책은 꿈이 아니라 현실속에 있다고 꺠달은 사람은 더 이상 복권 따위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세상에는 여전히 복권을 사는 사람과 더 이상 복권에 기대하지 않고 연대라는 죽어버린 
단어에 귀를 기울이는 두 종류의 임금노동자가 있다. 당신은 어느쪽인가?

Solidarity. 연대